Bible Study · 인물별 성경연구 · 제28과 · 2026. 06. 15
월요일 오후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예레미야

본문 예레미야 18:1-6 · 31:31-34

중심 사명 — 심판 너머의 소망을 바라봅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 그리고 마음에 새긴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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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인물 연구

예레미야 (Yirmeyahu)

눈물의 선지자,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이름의 뜻
히브리어 '이르메야'(יִרְמְיָהוּ) — "여호와께서 높이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던지신다/세우신다"로 풀이됩니다 (정확한 어원은 논쟁 있음).
가족 배경
베냐민 지경 아나돗(עֲנָתוֹת) 출신,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렘 1:1). 솔로몬 때 축출된 아비아달 계열(왕상 2:26)로 추정되는 소외된 제사장 가문입니다.
소명
요시야 13년(주전 627년경), 아직 어린 나이에 부르심을 받습니다. (다만 627년을 소명 시점이 아닌 출생 연도로 보는 소수 견해도 있음 — 논쟁 있음.)
망설임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 1:6). 자격 없음의 고백에서 시작된 사역입니다.

사역의 특징

대리적 고통과 박해

대리적 고통 — 백성을 위해 흘린 눈물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렘 9:1). 심판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그 심판받는 백성을 위해 우는 이중적 자리입니다.
평생 이어진 박해
① 고향 아나돗 사람들의 살해 음모(렘 11:21) ② 제사장 바스훌의 구타와 착고(렘 20:1-2) ③ 진흙 구덩이 감금(렘 38:6).
고백(Confessions)
렘 11-20장에 흩어진 여섯 편의 탄식. 하나님께 항변하면서도 끝내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정직한 신앙의 기록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예루살렘 멸망을 직접 목격했고, 이후 남은 자들에게 이끌려 애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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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40년 사역, 다섯 왕의 시대를 지나다

유다 왕 통치 연대 (BC) 국제 정세 시대의 특징
요시야 640–609 앗수르 쇠퇴 율법책 발견과 종교 개혁. 주전 627년경 예레미야 소명. 므깃도에서 전사.
여호아하스 609 (3개월) 애굽 지배 애굽 바로 느고에 의해 폐위, 애굽으로 끌려감.
여호야김 609–598 갈그미스 전투(605) · 바벨론 부상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로에 불사름(렘 36장). 1차 포로(605, 다니엘).
여호야긴 598–597 (3개월) 바벨론 1차 침공 2차 포로(597, 에스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감.
시드기야 597–587/586 바벨론 최종 침공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멸망. 예레미야가 이를 직접 목격함.

💡 시대를 읽는 열쇠

  • 사역 기간: 주전 627년경 소명부터 587년경 예루살렘 멸망까지, 약 40년. 한 나라가 무너지는 전 과정을 지켜본 유일한 선지자입니다.
  • 멸망 연대: 예루살렘 함락은 주전 587년 또는 586년으로 여러 설이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587년설이 다소 우세하나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 메시지의 역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그의 선포는 당대에 반역으로 몰렸으나, 실은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는 신앙의 선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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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선포한 상징 행동

예레미야는 말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의 몸이 곧 설교였습니다.

독신 · 애곡 금지 (렘 16장)

결혼도, 장례의 애곡도, 잔치의 참여도 금지됩니다. 정상적인 삶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중단될 만큼 다가올 운명이 비참함을 자신의 삶으로 예고합니다.

썩은 베 허리띠 (렘 13장)

허리에 밀착되어야 할 띠가 유브라데에 묻혀 썩어 쓸모없이 됩니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할 언약 백성의 부패를 드러냅니다.

깨진 옹기 (렘 19장)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옹기를 깨뜨립니다. 다시 붙일 수 없는 파편처럼 회복 불가능한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합니다.

나무 멍에 (렘 27–28장)

멍에를 목에 메고 다니며 바벨론에 복종하는 것만이 사는 길임을 선포합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이를 꺾었으나, 결국 쇠 멍에로 대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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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1 ·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예레미야 18:1-6

예레미야 18:6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 여는 질문 —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 자유는 분명 값진 열매입니다. 그러나 내 멋대로 사는 삶의 결과는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애초에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토기장이의 물레 앞에서 진흙이 스스로 형태를 정할 수 없듯이.

'토기장이'(יוֹצֵר, yotser)의 의미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יָצַר, yatsar) 바로 그 동사에서 온 명사입니다. 곧 토기장이 비유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근본 관계를 되새기는 선포입니다.

주권과 책임의 긴장

이어지는 18:7-10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하면서도, 그 백성이 "돌이키면" 하나님도 뜻을 돌이키신다고 선언합니다. 곧 토기장이 비유는 운명론이 아니라 회개로의 초청입니다. (주권과 인간 책임의 관계는 신학적으로 논쟁 있음.)

참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롬 6장 연결)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롬 6:20). 내 멋대로의 삶은 자유가 아니라 죄의 노예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참된 자유이며, 참으로 내가 사는 삶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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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2 · 마음에 새긴 새 언약

예레미야 31:31-34

💡 언약의 역사 — 구속사의 큰 흐름

  • 노아: 무지개
  • 아브라함: 할례
  • 모세: 안식일 · 율법
  • 다윗: 영원한 왕조
  • 새 언약: 예레미야 31장

예레미야 31장은 구약 전체에서 '새 언약'(בְּרִית חֲדָשָׁה, berit chadashah)이라는 표현이 명시된 유일한 본문입니다.

구분 옛 언약 새 언약
기록의 자리 돌판에 기록 마음에 기록
죄의 처리 반복되는 제사 완전한 사면 —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앎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 (지식) 하나님을 '아는' 것 — 야다(יָדַע, yada), 인격적·경험적 앎
율법의 위치 외면적 율법 성령으로 내면화된 율법

'야다'(יָדַע)의 깊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의 체험적 앎을 뜻합니다. 부부의 연합(창 4:1)에도 쓰인 이 단어는, 새 언약의 앎이 머리가 아닌 인격 전체의 앎임을 보여줍니다. ※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연속성 대 불연속성의 정도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 논쟁이 있습니다(단절로 보는 견해 / 갱신·성취로 보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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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결 — 십자가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 22:20). 히브리서 8:8-12은 예레미야 31장을 직접 인용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를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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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계 21:3). 렘 31:33의 언약 공식 —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 가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오늘의 중심 메시지

새 언약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가 하겠다'는 약속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예레미야 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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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성경공부 질문

질문 1 토기장이의 손 — 여전히 '내가 주인'인 영역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듯 우리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어떤 영역만큼은 끝까지 내가 쥐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내 삶에서 여전히 '내가 주인'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그 영역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이나 미련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질문 2 돌판인가, 마음인가

새 언약의 핵심은 율법이 돌판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은 여전히 지켜야 할 규범과 의무의 목록(돌판)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반응(마음판)이 되어 있습니까? 정직하게 돌아보고 나누어 봅시다.

질문 3 '아는'(야다) 관계로 나아가기

새 언약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아는(야다) 인격적 관계로 우리를 부릅니다. 이 관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이번 주에 실천할 구체적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서로의 결단을 나누고 함께 기도해 봅시다.

질문 4 눈물의 자리에 서기

예레미야는 심판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그 백성을 위해 울었습니다. 판단하기는 쉽지만 함께 울기는 어렵습니다. 내 주변에 비판의 말 대신 눈물과 중보가 필요한 사람이나 상황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그를 위해 이번 주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