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Study · 주제별 성경공부 · 2026. 10. 19
월요일 저녁반

그리스도의 신인양성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한 분, 우리의 중보자

본문 마태복음 16:15 · 요한복음 1:1, 14 · 빌립보서 2:6–8 · 히브리서 4:15 · 디모데전서 2:5

중심 사명 — 그리스도는 두 본성이 섞이지도, 변하지도, 나뉘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채 한 인격으로 연합하신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1

들어가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공부의 중심 질문은 마태복음 16장 15절입니다. 교회는 2천 년 동안 이 질문에 성경으로 답해 왔고, 그 답이 “일위양성(一位兩性)”, 곧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이라는 고백입니다.

💡 한 문장 요약

  • • 고백: 그리스도는 두 본성이 섞이지도, 변하지도, 나뉘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채 한 인격으로 연합하신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 • 일위양성(一位兩性): 한 위격, 두 본성. 네 개의 “않은 채”는 뒤에서 칼케돈 신조의 네 부정어로 다시 나옵니다.
2

오류는 네 방향에서 왔습니다

교회사

교회는 새 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증언을 왜곡하는 주장에 맞서 성경이 이미 말하는 바를 정확한 언어로 고백했습니다. 앞의 두 가지는 그리스도가 “무엇이신가”(본성)의 문제이고, 뒤의 두 가지는 “두 본성이 어떻게 관계되는가”의 문제입니다.

①

신성을 부정하다

에비온파, 아리우스 — 예수는 의인·선지자, 또는 지음 받은 첫 피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②

인성을 부정하다

가현설, 아폴리나리우스 — 육체는 겉모습뿐이며, 인간의 이성적 영혼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③

두 본성을 나누다

네스토리우스 — 두 본성을 사실상 두 주체처럼 분리했습니다.

④

두 본성을 섞다

유티케스 — 성육신 후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한 본성만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 덧붙임

  • • 가현설: 요한일서 4:2–3이 경계하는 흐름과 같은 계열입니다.
  • • 아리우스: 성자가 “무로부터” 지음 받았고 “그가 계시지 않던 때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 • 용어 주의: “유사본질”은 아리우스가 아니라 4세기 중반 유사본질파의 용어입니다.
3

보편 공의회와 주요 결정

교회사 · 325–681

연도 공의회 배격한 주장 결정
325 니케아 아리우스 성자는 성부와 동일본질
381 콘스탄티노플 성령훼방론자, 아폴리나리우스 성령의 신성,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
431 에베소 네스토리우스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451 칼케돈 유티케스 한 위격, 두 본성
553 제2차 콘스탄티노플 네스토리우스 경향 문헌 “한 분 그리스도”로 칼케돈 해석
681 제3차 콘스탄티노플 단의론 신적 의지와 인간 의지, 두 의지

💡 공의회별 해설

  • • 325 니케아: 회의 주도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감독이며, 당시 부제였던 아타나시우스는 이후 반세기 동안 니케아 신앙의 대표 변증가가 됩니다.
  • • 381 콘스탄티노플: 주 의제는 성령의 신성과 니케아 신앙의 재확인이었고, 아폴리나리우스 정죄는 그 일부입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취하지 않으신 것은 치유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남겼습니다(클레도니우스에게 보낸 편지, 서신 101).
  • • 431 에베소: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가 주도하여 테오토코스와 위격의 통일성을 확정했습니다. “두 본성” 공식은 433년 일치 신조와 칼케돈에서 명확해집니다.
  • • 451 칼케돈: 레오 1세의 서신(449)이 반영되었습니다.
  • • 681 제3차 콘스탄티노플: 그리스도의 인간 의지가 신적 의지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고백으로, 겟세마네 기도 이해에 중요합니다.
4

칼케돈 신조의 네 가지 “없이”

칼케돈 신조 (451)

칼케돈 신조는 그리스도를 “두 본성 안에서” 알려지시는 한 분으로 고백합니다. 앞의 두 부정어는 두 본성의 구별을 지키고(유티케스 배격), 뒤의 두 부정어는 한 인격 안의 연합을 지킵니다(네스토리우스 배격).

헬라어 라틴어 뜻 의미 지키는 것
ἀσυγχύτως inconfuse 혼합 없이 두 본성이 섞여 제3의 것이 되지 않음 구별
ἀτρέπτως immutabiliter 변화 없이 한 본성이 다른 본성으로 바뀌지 않음 구별
ἀδιαιρέτως indivise 분할 없이 두 인격으로 나뉘지 않음 연합
ἀχωρίστως inseparabiliter 분리 없이 두 본성이 서로 떨어지지 않음 연합

칼케돈은 신비를 다 설명하려 하지 않고, 넘어서는 안 될 울타리를 세운 고백입니다.

💡 참고

  • • 콥트·에티오피아·아르메니아 교회 등은 칼케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유티케스도 정죄하므로, 이들을 유티케스와 같은 “단성론자”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5

오류와 성경의 답

교회사

모든 오류는 성경의 일부 구절만 붙잡고 다른 구절을 놓친 데서 생겼습니다.

오류 핵심 주장 성경의 답
에비온파 신성이 없는 의인·선지자 요 1:1, 14 · 마 1:23 · 요 20:28
가현설 육체와 고난은 겉모습뿐 요일 4:2–3 · 눅 24:39 · 요 19:34
아리우스 성자는 지음 받은 최초의 피조물 요 1:3 · 요 10:30 · 골 1:16–17 · 히 1:3, 8
아폴리나리우스 이성적 영혼 대신 로고스 마 26:38 · 눅 2:52 · 히 2:17
네스토리우스 두 본성을 두 주체처럼 분리 요 1:14 · 고전 2:8 · 갈 4:4
유티케스 인성이 신성에 흡수됨 히 2:14, 17 · 딤전 2:5
단의론 그리스도의 의지는 하나 마 26:39 · 요 6:38
오류 오류 측이 근거로 삼은 구절 정통 측 대표
에비온파 신 6:4 · 막 10:18 이레네우스 · 터툴리안
가현설 빌 2:7 · 롬 8:3 사도 요한 · 이그나티우스
아리우스 잠 8:22(칠십인역 “나를 창조하셨다”) · 골 1:15 · 요 14:28 알렉산드로스 · 아타나시우스
아폴리나리우스 요 1:14 · 고전 15:47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네스토리우스 — 키릴루스
유티케스 요 1:14 레오 1세 · 플라비아누스
단의론 — 고백자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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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오류는 이름을 바꾸어 돌아옵니다

교회사 · 오늘의 흐름

오늘의 흐름 그리스도에 대한 주장 닮은 옛 오류
여호와의 증인 예수는 처음 창조된 존재, 요 1:1을 “신(a god)”으로 번역 아리우스
유니테리언 등 예수는 하나님을 깊이 의식한 모범적 인간 에비온파
하나됨 오순절파 성부·성자·성령은 한 하나님의 세 모습 양태론
신앙 속 가현설 “예수님은 하나님이니 내 고통과 무관하시다” 가현설

각 단체의 공식 교리로 확인되는 내용만 적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를 하나님이 처음 창조한 존재(대천사 미가엘)로 봅니다. 마지막 줄은 특정 단체가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 속에 스며드는 막연한 생각으로, 삶의 적용에서 다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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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심

본문 1 · 요한복음 1:1, 14

요한복음 1:1, 14 (개역개정)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계시니라” (ἦν)

태초에 이미 계셨습니다. 말씀에게는 시작이 없습니다. ἦν은 지속의 표현으로, 아리우스의 “계시지 않던 때”를 배제합니다.

•

“하나님과 함께” (πρὸς τὸν θεόν)

성부와 구별되는 위격, 인격적 교제를 말합니다. 이 표현은 양태론을 배제합니다.

•

“곧 하나님이시니라”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말씀의 본성이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한 신”도 아니고, 성부와 같은 위격도 아닙니다. 술어 θεός에 관사가 없어 “말씀 = 성부”라는 동일시를 피하면서, 문장 맨 앞에 두어 말씀의 본성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

“육신이 되어 … 거하시매”

변하신 것이 아니라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σὰρξ ἐγένετο는 말씀이 육신으로 “변했다”는 뜻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 본성 전체를 취하셨다는 뜻입니다. 칼빈은 이를 본성의 혼합이 아니라 위격의 연합으로 설명합니다(기독교강요 II.14.1).

ἐσκήνωσεν(거하시매)은 “장막을 치다”라는 뜻으로, 광야 성막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출 40:34)이 이제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 거하심을 보여 줍니다.

8

자기를 비우심

본문 2 · 빌립보서 2:6–8

빌립보서 2:6–8 (개역개정)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하나님의 본체” (μορφὴ θεοῦ)

겉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실제 존재 방식입니다. 7절의 “종의 형체”가 실제 종이심을 뜻하는 것과 같습니다.

•

“자기를 비워” (ἐκένωσεν)

무엇을 빼서가 아니라 종의 형체를 “취하심으로써” 비우셨습니다(분사 λαβών).

읽기 “비우심”의 의미
케노시스 기독론 신성을 뺌 — 아님
개혁주의의 읽기 인성을 더하심

신성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인성을 더하시고 신적 영광을 가리신 낮아지심입니다. 칼빈은 빌립보서 2:7 주석에서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벗어 버리실 수는 없었으나 한동안 감추셨다는 취지로 설명합니다.

💡 참고

  • • 케노시스 기독론: 신적 속성 일부를 포기하셨다는 19세기의 주장으로, “자유주의 신학”만이 아니라 토마지우스 등 에를랑겐의 신앙고백적 루터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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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같이 되신 중보자

본문 3 · 히브리서 4:15 · 디모데전서 2:5

히브리서 4:15 (개역개정)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배고픔(마 4:2), 목마름(요 19:28), 피곤(요 4:6), 슬픔(요 11:35), 죽음 — 주님은 죄를 제외한 모든 연약함을 실제로 겪으셨습니다. “동정하다”(συμπαθῆσαι)는 “함께 아파하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2:17 (개역개정)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죄인과 같은 본성 안에서 순종하고 형벌을 받으셔야 그 본성을 가진 우리를 속량하실 수 있습니다(히 2:14).

디모데전서 2:5 (개역개정)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승천 이후에도 “사람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육신은 임시 상태가 아니며, 주님은 영화롭게 된 인성으로 지금도 간구하십니다(롬 8:34; 히 7:25).

골로새서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한 구절 안에 완전한 신성과 실제 인성이 함께 고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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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자는 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셔야 하는가

개혁주의 고백

구분 참 사람이셔야 하는 이유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
공의 죄지은 인간 본성이 죄값을 치러야 한다 (롬 5:12–19) 피조물은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감당할 수 없다
대속 사람이어야 실제로 피 흘려 죽으실 수 있다 (히 2:14) 신성의 능력이 인성을 붙들어 진노를 견디게 하신다
효력 우리를 대표하는 언약의 머리가 되신다 그 순종과 죽음에 무한한 가치를 주신다 (고전 2:8)
위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다 (히 4:15) 성령을 보내시고 끝까지 지키신다 (요 16:7)

근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6–17문 ·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8–40문 · 소요리문답 21–22문

💡 더 살펴보기

  • • 신학사: 이 논리는 안셀무스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가』(1098)에서 체계화되었고, 칼빈 『기독교강요』 II.12–14와 요리문답들에서 개혁교회의 가르침으로 정리되었습니다.
  •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2항(요지): 성자는 때가 차매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그 본질에서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고, 두 본성은 변화·혼합·혼동 없이 한 인격 안에 연합되었으며, 그분은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한 그리스도,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 • 벨직 신앙고백: 18–19조도 같은 고백입니다.
  • • 속성의 교류: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전 2:8)는 신성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성으로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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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리가 주는 네 가지 위로

삶의 적용

🙏

기도 — 겪어 아시는 주님

피곤해 주무셨고, 친구 무덤에서 우셨고, 제자에게 팔리고 수제자에게 부인당하신 주님께 담대히 나아갑니다(히 4:15–16). 참 사람이신 주님은 우리의 아픔을 겪어 아십니다(막 4:38; 요 11:35).

✝️

확신 — 무한한 공로

내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중보자의 완전한 사역 위에 섭니다(히 7:25). 참 하나님이신 주님의 공로는 무한합니다(고전 2:8; 롬 8:34).

🏠

일상 — 몸과 삶도 귀하다

가정을 돌보고, 일하고, 병든 몸을 돌보는 일도 주님 앞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입니다(고전 10:31).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에 몸과 일상도 하나님께 귀합니다(요 1:14; 막 6:3).

🕊️

성화 — 성령을 의지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라고 물러서지 않고, 같은 성령을 의지해 따라갑니다(벧전 2:21). 참 사람으로 성령을 의지해 순종하신 주님이 우리의 모범이십니다(눅 4:1, 14; 마 26:39).

💡 주의할 점

  • •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라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그분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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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눌 질문

나눔

질문 1 나의 그리스도 이해

나에게 예수님은 “멀고 높으신 하나님”과 “나를 이해하시는 사람” 중 어느 쪽으로 더 가깝게 느껴져 왔습니까? 오늘 무엇이 균형을 찾았습니까?

질문 2 기도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마 26:39) — 참 사람의 의지로 순종하신 이 기도가 내 기도에 어떤 본이 됩니까?

질문 3 위로

주님이 우리와 같은 몸과 마음을 취하셨다는 사실이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짐에 어떤 위로가 됩니까?

생각해봅시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취하지 않으신 것은 치유되지 않는다”는 말과 연결해 생각해 봅시다.

질문 4 고백의 삶

육체로 오신 주님을 고백하는 삶(요일 4:2)은 이번 주 가정과 일터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요?

함께 드리는 기도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주 예수님,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를 아시고, 하나님이시기에 끝까지 구원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