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의 은혜
신명기 19장 1-13절
도피성의 은혜
신명기 19장 1-13절
신명기 12장부터 26장까지의 말씀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라는 율법의 큰 원칙을 구체적인 명령들을 통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19장 이후의 말씀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의 구체적인 적용으로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얼마나 아끼시고, 지키려 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도피성에 대한 규정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도피성에 대한 명령은 앞서 민수기 35장에서 주어졌으며, 신명기 19장에서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신명기 19장 3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되면 레위인에게 주신 성읍들 중 여섯 곳을 '도피성'으로 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후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말씀에 따라 도피성을 지정하였습니다.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신명기 19장 4절
도피성은 이름 그대로 '피할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죄인이든지 도피성에만 들어가면 무조건 용서받고, 처벌을 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죄악을 방치하고 죄인들을 부추기는 수단이 될테니까요. 오직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잘못으로 인해 다른 이의 생명을 잃게 한 사람만이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복수를 위해 살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를 죽이려는, 그러니까 복수하려는 사람이 살인의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는 의미도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원한이나 의도를 가지고 살인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살인죄에 대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한 번 도피성에 들어오면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야 자신의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과거의 원한이 모두 해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곧 대제사장의 죽음은 살인자에게 새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입니다. 물론 대제사장의 죽음이 죄를 속량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은 우리를 죽음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모든 죄를 속량하시는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바라보게 됩니다.
도피성 제도는 살인죄와 관련된 명령이었으나 이 명령의 본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죄악으로 인해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며 그렇게 서로의 삶을 망가트리는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도피성으로 피하는 자들을 받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나의 피난처이심을 믿고 주 품으로 피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안아 주십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숨 쉴 틈이 필요합니다. 제 아무리 건강한 육체라도 제대로 숨쉬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쉬라 하신 것입니다. 육체 뿐이 아니지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도 쉼이 필요합니다. 물론 아무 곳에서나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원수의 칼날이 내려치는데 쉬겠다고 손을 내려 놓을 수 없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 앉아 쉴 수는 없습니다.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참된 쉼을 누릴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는, 변함이 없는 피난처가 되십니다. 어린 새들이 어미의 날개 아래에서 폭풍우를 견디어 내듯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비로소 우리가 평안한 쉼을 누립니다. 열심을 다해, 용기를 내어 세상을 살아가다 나의 힘만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폭풍우에 부딪혔을 때, 나를 무너뜨리려는 적들에 둘러쌓여 외롭고 괴로울 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생명의 능력을 잃어갈 때, 오늘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 시편 61편 3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오늘도 주의 곁에 머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