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7

실패한 나실인, 삼손

사사기 14장 5절 - 15장 20절

실패한 나실인, 삼손

사사기 14장 5절 - 15장 20절

블레셋에게 지배당하며 고통받는 중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점점 더 깊은 죄의 늪으로 빠져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사 삼손을 세우셨습니다. 사사들은 그 시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표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나실인의 거룩한 삶을 명하셨으나, 그는 그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사사로서 삼손의 첫 행보는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부모에게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나안의 죄악을 좇아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부모의 만류에도 삼손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삼손의 결혼과 관련하여 이어지는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사사기 14장 4절에 담겨 있습니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14장 4절)

그런데 이 본문에는 해석의 문제가 있습니다.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하였다는 표현은, 삼손이 블레셋을 치기 위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의도적으로 저질렀다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면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다"는 설명과 연결되기 어렵습니다. 성경 원문을 직역하면 "그가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했다가 되는데, 여기서 '그'는 삼손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문맥상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정리하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삼손이 자신의 결혼을 위해 벌이는 일들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죄를 쫓아 움직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삼손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역사하셨습니다.

삼손과 블레셋 여인의 혼인 과정에서 긴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정작 인상적인 장면은 없습니다. 결국 삼손이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동하다 블레셋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고, 큰 싸움에 이르렀습니다. 철저히 삼손의 욕망 때문에 갈등이 빚어졌고, 그의 개인적인 복수로 일이 커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삼손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했는지, 사사요 나실인인 자신의 소명을 지키는 일에 얼마나 부주의했는지가 드러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원수 블레셋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나, 이스라엘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씁쓸한 승리였습니다.

사사는 가나안의 죄를 좇아 타락해 버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세우신 구원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사사다운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삼손의 실패와 그로 인한 혼란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구원하시겠다는 당신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교회를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도 삼손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삶은 잊어버리고, 맡기신 소명에도 무관심합니다. 나실인의 소명을 잊은 삼손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소명을 잊은 채 그저 내 눈에 좋은 것을 좇아 살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모자람 가운데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소명을 잊은 삼손을 사용하신 것처럼, 때로는 악한 자들을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함은 또한 분명하게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블레셋과 싸워 이겼으니 삼손이 훌륭한 사사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고 어떤 식으로든 쓰임 받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하신 계획을 이루시지만, 우리는 각자 삶의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잠시 쓰임 받았으나 결국 버려지는 삶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약한 나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기 위해 믿음의 열심을 다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