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모든 것을 망칩니다
사사기 19장 1-30절
죄가 모든 것을 망칩니다
사사기 19장 1-30절
앞선 사사기 18장과 마찬가지로 19장 역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줄여서 표현되었으나 정확히는 사사기 17장 6절의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17장 6절
는 말씀의 반복입니다. 사사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 여러 문제들의 본질적인 원인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왕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한 결과, 한 개인에서부터 가정, 나아가 지파와 온 이스라엘까지 우상숭배에 사로잡혔고, 죄악에 무너졌습니다.
오늘 한 레위인의 집에서 시작된 사건은 온 이스라엘에 만연한 죄악의 비참한 결과를 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던 그 때,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한 레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 베들레헴 출신의 첩과 함께 살았습니다. 앞서 미가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레위인 청년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이 시대 레위인들 중에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른 믿음을 지탱해야 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소명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레위인과 첩 사이에 불화가 생겨 여인이 베들레헴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넉 달이 지나자 화가 누그러졌는지 남편 되는 레위인이 여인을 설득하여 다시 데려오기 위해 베들레헴 처가로 향했습니다. 정식 부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사위라고 장인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장인의 아낌없는 환대 가운데 여인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레위인이 첩과 하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는 2-3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평평하게 잘 정비된 길이라면 대여섯 시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돌과 흙으로 덮인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거친 길이었습니다. 짐도 많았고, 함께 하는 하인과 여인도 있었기에 족히 이틀은 걸어야 했습니다. 10 킬로미터 정도 열심히 걸어 당시에는 여부스 족속이 살던 예루살렘 인근에 이르자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종은 이 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가자 하였으나 이방 사람의 성읍에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레위인은 조금 더 가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인 기브아까지는 가서 쉬자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읍이라야 잘 대접 받으며 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선택이 불러올 끔찍한 결과를 이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기브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진 후였습니다. 레위인 일행은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 근처 광장에 앉았습니다. 당시 성문 근처 광장은 모든 사회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경제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도, 공개적인 재판이 열린 곳도 성문 근처 광장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광장에 들어선 것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을 환대하며 나서지 않았습니다. 나그네에게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풍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브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보편적인 관습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워 하던 레위인과 일행에게 한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해가 저물어 성 밖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노인이 나그네들을 보고 인사를 건넸던 것입니다. 냉담한 기브아 사람들 중 이 한 사람만이 도움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노인은 "거리에서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며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이제사 마음을 놓고 쉼을 누리려 할 때, 마을의 불량배들이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겼습니다. 주인이 나가보니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며 그를 위협했습니다.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해 동성을 성폭행하겠다는 더러운 욕망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던 것입니다. 주인이 "이런 망령된 일"을 저지르지 말라고 반발했지만 죄악에 사로잡힌 이들의 귀에 들릴 리 없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줄테니 그들에게 "너희 눈에 좋은대로 행하라"고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타협이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레위인을 지키겠다며 애꿎은 여인들을 폭력에 내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무리들은 다 필요 없으니 남자를 내놓으라 소리칩니다. 이 때, 레위인이 자기 첩을 자기 손으로 끌어내 집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밤새 집 밖의 거리는 악마들이 장악한 지옥과 같았습니다. 아침이 밝을 때까지 고통 받던 여인은 자신의 남편이 머물던 집 문 앞에 엎드린 채 버려졌습니다. 날이 밝은 후에야 집 밖에 나온 레위인이 여인을 발견하고 어서 이 곳을 떠나자 했지만 이미 여인은 숨진 이후였습니다.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괴로워하고 분노해야 할 레위인은 정작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저 여인의 시신을 나귀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이 살겠다며 여인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이 다름 아닌 그였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이 한 일은 끔찍하다 못해 기괴합니다. 그는 죽은 여인의 시신을 토막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가장 자극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알렸던 것입니다. 모든 과정에서 정작 가장 큰 피해자였던 여인에 대한 안타까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레위인의 분노와 복수심만 가득합니다. 그 또한 자기 눈에 옳은 대로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사건은 이스라엘 온 지파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의 무섭고 추악한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이 사건은 여러모로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죄악의 결말이 그러합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도 사라집니다. 위선, 관계의 파괴, 성적인 타락, 폭력과 살인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욕망과 폭력만이 가득하지요.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철저히 짓밟고 무너뜨립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더러운 죄는 말할 것도 없으나 레위인 역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가 말하던 사랑은 허울 좋은 거짓이었을 뿐 여인에 대한 어떠한 희생과 헌신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쏟아내는 것만이 전부였지요. 이것이 죄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죄악들로 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내 욕망을 쫓아, 내 눈에 보기 좋은대로, 내 마음에 편한대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죄악들이 모여 이 땅을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세상을 밝히고 지키는 빛과 소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싸움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죄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내는 우리의 하루가 귀하고 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