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06

어리석은 입다, 스스로 놓은 덫에 붙들리다

사사기 11장 1-11절

어리석은 입다, 스스로 놓은 덫에 붙들리다

사사기 11장 1-1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사사기 10장 6절

사사 야일에 대한 말씀에서 보았듯이 요단 강 동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지역을 길르앗이라 부릅니다. 길르앗 남동쪽의 사막과 광야 지대에 자리잡고 살던 암몬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고, 이 후 열여덟 해  동안이나 암몬의 지배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사사기 10장 10절

그동안 사사기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으니 이어질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사사를 세우시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버리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사사기 10장 11-13절

하나님께서 죄악을 반복하고 하나님을 거듭해서 배신해 온 이스라엘을 더 이상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택한 우상들에게 부르짖으라 하셨지요. 이스라엘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며 우리를 구해달라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우상들을 없애고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하나님께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에 근심이었고,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근심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도 침묵하셨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과 암몬 족속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전장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 길르앗 사람들에게는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회개를 다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나 정작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닥쳐왔을 때, 이스라엘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사사기 10장 18절

위기의 순간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자신들의 왕을 찾았습니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의 왕입니다.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했던 이스라엘,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 그 비참한 끝을 보았으나 오늘 길르앗 사람들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구할 통치자를 찾아 나선 길르앗 장로들의 선택은 당시 큰 용사라 소문이 날 정도로 제법 세력을 이루었던 '입다' 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입다는 산적 두목, 좋게 말하면 무장단체 수장 이었습니다. 당장 군사를 모아 암몬과 싸워야 할 길르앗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입다와 그 무리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군사령관의 자리를 줄테니 암몬과 싸워 달라 요청했습니다. 원래는 왕을 찾기 위해 나섰으나 아무래도 기생의 아들 입다에게 왕의 자리를 맡기기는 꺼려졌었는지도 모릅니다. 입다 역시도 보통내기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복형제들에게 천대받아 쫓겨날 때는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전쟁이 나자 이제야 도와 달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따지지요. 입다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급한 것은 길르앗 장로들이었지요. 그들이 다시 제안했습니다. 암몬과 싸워 이기면 입다를 길르앗의 통치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입다는 자신이 암몬을 이기면 분명 자신을 통치자로 세우겠느냐며 되물었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실 것이니 분명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입다가 길르앗의 사령관, 통치자가 되어 암몬과의 전쟁에 나섰습니다.

길르앗 장로들과 입다의 대화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입다는 권력을 쥘 명분을, 장로들은 전쟁에서 싸울 장수를 얻겠다는 각자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신들의 왕을 찾았습니다. 입다는 스스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겠다고 나섰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나 어디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사사기 11장 29절

입다에게서는 사사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도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그럼에도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배역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암몬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입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더하셨던 것입니다.

입다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암몬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피와 살이 튀고,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사사기 11장 30-31절

그 때, 입다가 하나님 앞에 서원하며 간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거짓 약속, 거짓 믿음일 뿐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 그는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분명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 서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서원은 형식은 그럴듯하나 내용은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암몬을 이기게 하시면 집에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그를 맞이하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일지 입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걸고 하나님께 서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는 그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소와 양을 태워 하나님 앞에 드리듯 사람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었지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 큰 죄악입니다. 신명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죄악이라 말씀하시고 분명하게 금지하셨습니다. 입다의 서원은 실체가 없는 큰 소리였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죄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한다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의 온갖 우상들과 모압과 암몬 등 이방 신앙들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입다 역시 이러한 우상숭배의 문화에 물들어 있었기에 온갖 거짓 신들이 그러하듯 하나님께도 사람을 바치면 기뻐하시고 힘을 주실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그들을 참된 믿음으로 이끌어야 할 사사부터가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황이 어떠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입다의 서원은 하나님 앞에 진실한 간구의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바칠테니 승리를 달라며 하나님의 능력만 이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기에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빼앗겼던 땅들을 되찾았고 암몬을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입다와 이스라엘의 승리를 짧은 문장으로 냉랭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

전쟁에서 승리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온 입다를 가장 먼저 나와 맞은 것은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은 순간 지워졌고, 딸을 잃어야 한다는 슬픔과 괴로움이 입다를 그리고 그의 집을 뒤덮었습니다. 어쨌거나 서원을 지키려는 입다의 믿음이 대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아무 의미 없는 어리석은 고집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제 멋대로 정해 놓은 거래의 대가로 딸을 죽이려 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행동이 아니라 지독한 교만의 결과이며 헛된 자기 의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입다는 자신의 딸만 비난했습니다. 왜 하필 먼저 나와서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하느냐며 한탄했지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입다가 딸을 제물로 바치기까지의 과정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고백처럼 보이나 실상은 입다의 교만과 어리석음, 거짓 믿음이 만들어낸 의미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덫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던 것입니다.

스스로를 높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만 이용하는 죄악은 입다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가짜 믿음, 가짜 열심이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 예수를 믿는다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온갖 미신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지요. 집사, 권사라며 직분을 명함처럼 내세우면서도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사주팔자를 따집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여전히 거짓 우상들을 놓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스스로 잘될 수 있는가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한 채 우상숭배의 거짓 믿음을 교회로 가지고 들어온 결과 나타난 것이 하나님께 공덕을 쌓아 복을 받겠다는 공로주의, 그저 세상에서 잘 사는게 복이라는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도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는 죄악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처참한 실패이고, 괴로움입니다.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유일한 소망이 됩니다. 내 욕심대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내가 나아갈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기에 헛된 우상과 미신의 소리들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


어리석은 입다, 스스로 놓은 덫에 붙들리다

사사기 11장 1-1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사사기 10장 6절

요단 강 동편 길르앗에 살던 이스라엘을 광야의 암몬이 침략하였고, 열여덟 해 동안 지배가 계속되었습니다. 그제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사사기 10장 10절

이제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시리라 짐작되지만, 하나님의 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사사기 10장 11-13절

하나님께서는 배신을 거듭해 온 이스라엘을 다시는 구원하지 않겠다, 너희가 택한 우상들에게 부르짖으라 하셨습니다. 다급해진 이스라엘은 우상들을 없애고 예배하며 구원을 외쳤으나, 그 회개는 하나님께 근심이 되었습니다. 진실하지 않음을 아시기에, 그럼에도 사랑하시기에 근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이 때 암몬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최전선에 선 길르앗 사람들에게서 다시 이스라엘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회개를 다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나 결정적인 순간, 그들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사사기 10장 18절

위기의 순간 그들은 참된 왕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찾았습니다. 기드온과 아비멜렉의 전례에서 그 비참한 끝을 보았으나 길르앗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길르앗 장로들의 선택은 큰 용사라 소문난 입다, 곧 산적 두목이었습니다. 장로들이 군사령관 자리를 제안하자, 입다는 자신이 쫓겨날 때는 모른 척하더니 이제야 도와달라느냐고 따졌습니다. 급했던 장로들은 암몬을 이기면 입다를 길르앗의 통치자로 삼겠다고,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시리라 맹세했습니다. 마침내 입다가 사령관이 되어 전쟁에 나섰습니다.

이 대화에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입다는 권력의 명분을, 장로들은 싸울 장수를 얻으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나 어디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사사기 11장 29절

입다에게서 사사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이스라엘도 사랑하시기에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들을 구하시려 입다에게 능력을 더하셨습니다.

입다가 군대를 이끌고 암몬의 진영으로 향했습니다. 전쟁 직전이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사사기 11장 30-31절

그러나 이 서원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거짓 약속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실상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누가 나올지 자신도 모르는 사람을 걸고 서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다 했습니다. 신명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분명히 금지하셨습니다. 입다의 서원은 실체 없는 큰소리였고, 하나님께 약속한다면서 그 명령에 도전한 죄악이었습니다. 당시 이방 신앙에서는 인신제사가 실제로 행해졌고, 입다 역시 그 문화에 물들어 하나님께도 사람을 바치면 기뻐하시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백성을 참된 믿음으로 이끌어야 할 사사부터 우상숭배에서 헤매고 있으니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입다의 서원은 생명을 바칠 테니 승리를 달라는, 하나님과의 거래 시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기에 입다는 승리했고 빼앗긴 땅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승리를 짧고 냉랭하게 전합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입다를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외동딸이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은 지워지고 슬픔이 그의 집을 뒤덮었습니다. 서원을 지키려는 모습이 대단한 믿음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어리석은 고집이었습니다. 말씀도 알지 못한 채 제멋대로 정한 거래의 대가로 딸을 죽이려 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교만이며 헛된 자기 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입다는 왜 하필 먼저 나왔느냐며 딸만 비난했을 뿐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애절한 고백 같으나 실상은 거짓 믿음이 만든 괴로움이었으니,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만든 덫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이용하는 죄악은 오늘 우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정작 말씀은 무시하는 가짜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점쟁이를 찾고 사주팔자를 따지며 우상을 놓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잘될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공덕을 쌓아 복을 받겠다는 공로주의요,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복이라는 기복신앙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도 말씀에 도전하는 죄악이며, 그 끝은 처참한 실패와 괴로움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내 욕심대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나아갈 때 참된 행복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기에 헛된 우상과 미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삽니다.